본문 바로가기
크툴루 장르 소설 연재

드라곤 남작 1부

by 작은새추리 2022. 9. 30.
반응형

 

 

 나의 조악한 정신이 완전히 미쳐버려 사리분별을 파악하지 못하고 헛것을 본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편이 마음은 훨씬 편할 것이다. 대게의 사람들은 나의 이 생경하고 불온한 믿음에 관해 그 신지학자들이 그랬듯 비난을 퍼부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과거의 나조차도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면 코웃음을 치고, 한낱 미친 자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내가 떨리는 손으로 써 내려가는 이 미친 일대기는 인간 군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영역의 것임이 확실하다. 고고학자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방과 동방의 많은 유적지를 탐사하기 위해 배에 오르곤 했다.

 

 갓 성인이 된 시점의 그때, 우연한 계기로 조부와 함께 과거 스키타이 인이 지배한 곳이라 여겨진 신비로운 땅인 크림 반도로 가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사람들은 우리와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대체적으로 조금 덜 떨어져 보이고, 품위가 없는 모양새였다. 배가 도착하는 선박에는 이런저런 물건을 팔기 위해 나온 어른과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어쩌면 그곳에 도착한 관광객들보다 잡상인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자신들과는 차이가 나는 외모를 지닌 우리 둘에게 그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나는 그제야 이 긴 여정을 함께한 배에 기이한 동양인 집단과 우리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부는 익숙하다는 듯 화폐를 꺼내 잡상인들과 능숙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약간의 긴장으로 몸 전반의 근육이 위축된 상태였다. 그곳의 추위도 한몫했을 터이다. 조부와 잡상인의 고리타분한 형식적 대화가 어느 정도 지나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숙박 시설로 몸을 옮겼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추운 날씨에 몸살 기운이 찾아온 것이었다.

  “이곳에 뭐가 있는 거죠?”

  “흠, 쉽게 대답하기 어렵구나. 모름지기 고고학자라면 일단 부딪혀 보는 거지, 최근 접한 많은 매체에 의하면 이곳에는 설인의 흔적이 있다고 해. 거대한 빅풋 말이야. 어린 시절 한낱 괴담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관한 무엇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뭐에 홀린 듯 이 여행을 계획했단다.”

 빅풋이라! 이 길고 험난했던 여정이 존재할리 없는 미지의 존재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실로 그랬던 것이 이곳으로 오는 긴 항해의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위기를 맞았다. 배가 좌초될 뻔했고, 지하 저장창고의 가스가 새 잠든 새 죽을 뻔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난으로 인한 괴로움보다도 나의 조부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컸기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고기를 기름에 튀겨 양념에 찍어먹는 스타일인 스키타이인들의 전통 음식을 배 채우는 용도로 입에 구겨 넣고 별다른 사건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소름 돋는 울음소리를 선명히 들었다. 늑대의 그것과는 비교할 바 없이 우렁차고 괴이한 그 울음은 우리의 의구심을 더 증폭시켰다. 이곳에만 존재하는 동물이 있지 않는 한 그건 평범한 동물의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 길로 우리는 퍽퍽한 고기 덩이를 집어던지고 추위는 잊은 채 즉각 소리가 들린 근처 매장지로 향했다. 손에는 작지만 썩 괜찮은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뭐라도 발견하면 즉각 기록에 남기려던 것이다.

  “이토록 긴장되는 건 간만이군, 오컴. 잘 따라오고 있지?”

 침을 꿀꺽 삼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응답했다. 나는 이 고립된 매장지의 음침한 풍경에 취기에 가까웠던 우리의 여정을 후회하던 참이었다. 더욱이 그런 것이 뭔가에 대응할만한 물건이 없었다. 들짐승이나 괴한이 우리를 덮친다 해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응형


  “오, 이런! 어서 와봐, 오컴. 이걸 보라고.”

 불을 처음 발견한 인류처럼 흥분한 조부는 평소의 그 위엄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나를 불렀다.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를 조급함도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모를 누군가의 묘를 조부가 파헤치고 있었다.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다. 손 틈새 흙을 묻혀가며 조금의 피도 흘려가며, 확실히 뭔가에 홀린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크나큰 두려움에 휩싸여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를 말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우측의 묘비만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곤 남작, 6C~7C 어느 사이 살았던-

 
 6세기의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의 묘가 아직까지 있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영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 이곳에 와 다시 묘를 세운 걸 말고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신이 바짝 차려진 나는 조부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매달렸다. 덩치가 꽤 좋으셨던 분이기에 구십이 넘은 노령의 나이에도 미친 듯이 땅을 팔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으셨다. 그의 목을 힘껏 졸라 기절시키고 나서야 그 미친 도굴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달빛이 오싹함을 배로 만들었다. 당신께서는 무척이나 깊게 땅을 파셨는데, 안쪽으로 쉽게 예측하기 힘든 과거의 어떤 형상들이 가득한 관이 보였다.

 

관의 외곽에는 3세기에 쓰였다는 니플라 부족의 언어와 잡다한 그림이 있었는데, 실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설에 불과했던 언어에 광적인 집착을 가진 조부의 영향으로 나 또한 어느 정도 문자를 읽을 수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분명히 관에 적혀 있었던 건 ‘돌아오다.’라는 말이었다. 얼기설기 대충 글을 훑어 내리던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획 돌렸다.

 

 

                                                                                                                                   written by J.H Lee

반응형

'크툴루 장르 소설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말리움(2)  (0) 2022.10.03
아말리움 (1)  (0) 2022.10.03
드라곤 남작 2부  (0) 2022.09.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