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프리드리히 헤겔의 생애와 추상법의 초기 단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 시간은 의지, 인격, 소유, 계약에 이어서 이후 전개되는 개념들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계약은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공식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이러한 권리-의무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는 것이 소송이다.
모든 민사 소송은 소유물의 교환과 관련하여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판별함으로써 종결된다. 이 과정에서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그른 것이 된다. 옳음과 그름의 관념은 이처럼 계약과 관련된 권리-의무 관계로부터 발생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민사 소송이 그런 것처럼, 그르다는 판결을 받은 사람의 행위가 반드시 도덕적으로 악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1. 불법
이러한 그름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 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판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경우는 사악한 의도가 없는 불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악한 의도란 것은 남의 것을 침해하려는 목적으로 범죄를 벌이려는 것을 말한다. 즉, 타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소유권과 계약을 통해 구체화한 타인의 자유의지를 (초반에 의지는 구체화하여 있지 않았으나 소유를 통해 구체화한다고 앞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 있다)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범죄 행위이다.
헤겔은 이러한 억압에 대해 억압을 사용하여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을 처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2. 처벌
처벌이란 부정된 자유의지를 다시 부정함으로써 원래의 권리를 긍정하는 행위이다. 헤겔의 처벌에 대한 정의는 보복 주의
(응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보복은 그 개념상 침해의 침해이다. 현존의 측면에서 보자면 범죄는 특정한 질적 양적 범위를 지니며, 범죄의 부정도 현존으로서는 범죄와 동일한 질적 양적 범위를 지니기 때문에 범죄의 지양은 보복이다."
3. 법
헤겔은 처벌이 권리의 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처벌(법)이 완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이 정당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인격에 의해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정의를 이룰 것이다.
인격은 이러한 자각과 내적 반성을 통해 처벌을 내면화한다. 다르게 말하면 처벌(법)이라는 외적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추상법이 내적 심리를 규제하는 도덕으로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때까지 공부했던 키워드를 정리하면,
처음에 의지를 가진 모든 인격은 자타의 구분이 모호한 막연한 추상적 상태이며,
자신의 의지를 소유물에 투여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구체화한다.
이러한 소유물은 나 자신의 의지를 대표하는 것이며, 이로써 인간들은 소유물을 모두 가지게 된다.
소유물들은 계약을 통해서 이전될 수 있으며 이때 계약이란 하나의 주관적 의지가 두 개 이상의 공통적 의지로 객관화됨을 말한다.
주관적 의지에서 개관된 의지로 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소유와 계약이 존재하는 곳에 불법은 있기 마련이다. 불법이란 그저 남의 소유물을 침해하는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물을 소유주인 인격을 침해하는 것, 즉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응보적 성격의 처벌은 악한 의도를 자니 범죄자를 대상으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처벌은 곧 법이며, 추상법으로서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추상법은 각 사람의 인격에 자리 잡아서 내적 심리를 규제하는 도덕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헤겔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의지에서부터 추상법(외적 규범)과 도덕(내적 규범)의 생성 과정까지 기술하고 있다.
물론 다 온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남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의 생성까지 진행될 것이다. 한번 인내심을 가지고 잘 따라와 보자.
4. 도덕
이렇게 헤겔은 도덕을 주관적 의지의 법으로 규정한다. 추상법이 자유의지의 외적인 현존이라면 도덕은 자유의지의 내적인 현존, 즉 의지의 주관성 혹은 주체성 안에서의 자유의 현존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도덕의 단계는 추상법 단계에서의 외적인 자유가 내면화한 영역으로서, 이 단계에서의 자유의지는 외부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자각하고 이에 따라 자기의 실현을 지향하는 도덕적 의지이다.
도덕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기도와 책임
우리는 보통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행위에 접근한다. 그런데 행위는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최대한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그것들의 상관관계 속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수단을 택해서 목적 실현을 추구한다.
하지만 상황은 무한하다. 변수는 무한히 많고 그것을 모두 계산할 수 없을뿐더러 인식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상황 판단력은 당연히 불완전하고 미흡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실행할 수단도 불완전하다.
적합한 판단을 했다 쳐도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가 있다. 우리는 결과를 정확히 예상할 수 없고 기대하는 대로 일어나길 보장할 수도 없다.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그것을 기도하고, 그렇게 행동한 결과는 내가 기도한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내 책임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기도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헤겔은 어떤 행위가 가져온 결과 전체를 행위자에게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 무한한 세상의 일에서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한 무한정한 책임과 행위자에게 귀착될 수 있는 책임을 구별하기 위해 의지의 법 (권리)를 제시한다.
의지의 법이란 자기가 기도한 것에 대해서만 자신의 행위로써 인정하고 단지 그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의지의 법(권리)은 오직 의지가 표상했던 것만을 자신의 행위로 인정하며, 그것만을 책임져야 한다. 의지가 실행한 것은 의지의 책임으로만 고려될 수 있을 뿐이며, 오직 행위 자체에 속하는 것만을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의지의 법(권리)이다."
둘째, 의도와 복지
기도가 개별 행위와 관계하는 것이라면 의도는 개별 행위에 포함된 보편적 내용이다.
의도는 기도보다도 한층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행위와 연관됨을 전제한다.
의도는 주관적이고 특수하고 유한한 목적 그 이상의 목적을 지향하는데 그것은 바로 보편적 복지이다.
셋째, 선과 양심
인간 행위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계기는 선을 따르는 의지이다. 의지의 절대적 목적은 선이다.
칸트의 선의지가 떠오른다. 칸트의 의지가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순수한 의지라면 헤겔 또한 인간의 의지가 선을 따른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일까? 칸트에게 있어서 선이란 것은 보편적 도덕 법칙일 것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선이란 앞서 말한 보편적 복지이다. 모두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선이며 의지는 절대 목적으로 항상 이를 따르려고 한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이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 과정과 수단은 옳아야만 한다. 범죄나 악을 수단으로 삼아 보편적 복지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선은 실현된 자유이며 세계의 절대적 궁극적 목적이다."
"참다운 양심이란 선한 것을 의욕 하는 심성이다. 참다운 양심은 확고한 제 원칙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원칙은 양심에는 대자 적으로 객관적인 규정이며 의무이다. 하지만 양심은 무한한 자기 확신일 뿐이므로 어떤 일개 주관의 확신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달리 말해 양심은 보편적인 것을 원리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면서 또한 못지않게 자의, 즉 자기만의 특수성을 원리로 삼고 바로 이 특수성을 행위를 통하여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것이 곧 악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헤겔은 양심이 주관적이므로 선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자기 확신으로 인하여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오늘 이렇게 도덕까지 알아보았다. 다음 포스팅은 추상법 단계에서 더 나아가 인륜 단계를 소개하겠다. 헤겔 이론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이다. 헤겔의 도덕 철학의 진행이 갑자기 드라마틱해지며 비약적일 수 있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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